비난이 쏟아진 나의 데뷔작 스미요시 나가야
‘창이 없는 외관은 너무 폐쇄적이다, 안팎을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것이 과연 가정집으로 적당할까, 단열도 되지 않아 추운 겨울에는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까. 비가 오는 날 침실에서 화장실에 가려면 난간도 없는 계단을 우산을 받쳐 들고 가야 한단 말인가’
물론 상식적인 기능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집이다. ~ ‘결코 일반적인 답이 될 수는 없는 집’이라는 말꼬리가 붙었다.
그러나 기능을 생각하지 않고 예술 작품처럼 자기 취향대로 만든 집이라는 비평에는 동의할 수 없다. 결코 이 집은 그 안에서 영위되는 생활을 무시하고 만든 것이다. 오히려 일상생활이란 무엇인지, 가정집이란 무엇인지를 나 나름대로 철저히 생각하고 계산해 낸 건축이었다.
모던 리빙의 유행, 시타마치 사람들의 생활
1970년대 초 일본 사회는 고도 결제성장 한복판에 있었다.
당시 사람들이 원하던 것은 최신 설비를 잘 갖춘 미국 스타일의 주택이였다. 명랑한 모던 리빙 이미지를 선전하는 아파트, 분양 및 주택 융자를 이용한 단독 주택이 무서운 기세로 지어지기 시작했다.
다만 당시 교토, 오사카, 고베에서는 신흥 주택지가 분양 주택으로 속속 채워져 가고 있었지만, 내 주위에서는 여전히 재래 공법의 목조가옥이 주류였고, 그런 집들이 열을 지어 밀집한 것이 당시 현실의 풍경이였다. 모던 리빙과는 거리가 먼 환경이였다.
내가 자란 집은 오사카의 아사히에 있는 목조로 된 2층집이었다. ~ 덕분에 어릴 적부터 집이라고 하면 어쩐지 어둡고 좁은 곳, 겨울이면 춥고 여름에는 찌는 곳이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. 이런 주거 환경을 어떻게든 개선하고 싶다는 불만과 분노가 건축을 해 보겠다는 나에게 에너지원이 되기도 했다.
결코 살기 편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집이지만 서향의 뒷마당 덕분에 최소한의 통풍과 채광은 되고 있었다. ~ 저녁에 잠깐 뒷마당으로 비껴드는 볕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.